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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이씨 역사 > 역대중요인물 > 이양생

1423(세종 5)∼1488(성종 19).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군수 종직(從直)이다. 서자로 태어나 어릴 때는 신을 삼아 저자에 내어 팔아 생활을 하였고, 비록 책은 읽지 못하였으나 무예(武藝)에 능하여 장용위(壯勇衛)의 군졸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군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충의교위(忠毅校尉) 행호분위중부사직(行虎賁衛中部司直)으로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자급(資級)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으나 한 번도 현직(顯職)에는 등용되지 못하였고, 평생 겸사복으로 있으면서 포도장으로 도성 내외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도적 소탕에 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관악산 일대에 둔취, 항거하였던 고도(古道)ㆍ김말응(金末應) 등의 소탕과 충주의 수리산(愁里山), 여주의 강금산(剛金山) 도적들을 소탕하여 큰 공을 세운 것이 유명하다.

평생을 겸사복으로 지냈으나 불평 한마디 없었고, 옛날 자신이 신장사하던 저자를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옛 친구들과 땅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가곤 하였다 한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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